목차
프롤로그
육식 소녀
악마 소환
현세 지옥
흉성 강림
프롤로그
1999년, 공포의 대왕이 강림하여 지옥의 문이 열렸다.
666의 악마가 지옥문을 통과하여 세상으로 풀려나
세계는 지옥이 되었다.
그로부터 10년 후…….
그 누구도 세계가 지옥이 된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.
심야의 아파트촌은 얼핏 북적대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사실 한산하기 그지없는 곳이다.
도로 위로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빛의 강을 이루고 수많은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수백의 불빛을 발하며 그곳에 삶이 있음을 알리지만 그 빛은 결코 타인과 교류하지 않는다. 그저 바라보고 지나칠 뿐. 그렇기에 거리를 걷는 이들에게 사람이란 흔하면서도 동시에 귀한 존재다.
그래서 소년이 집에 가기 위해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, 작은 쪽길로 발걸음을 옮겼을 때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해도 그다지 희귀한 일은 아니었다.
그 인적 없는 쪽길을 걷다 말고 소년은 소리를 들었다.
으드득, 으드득.
기묘한 소리였다. 하지만 아주 낯선 소리는 아니었다. 소년은 그와 비슷한 소릴 들은 기억이 있었다. 무슨 다큐멘터리에서였더라? 거대한 사자가 가젤을 사냥한 후 포식을 즐길 때, 저런 소리를 배경음으로 틀어 줬었는데.
소년은 발걸음을 멈췄다.
으드득, 으드득.
뼈를 부수는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. 대체 얼마나 큰 맹수가, 얼마나 큰 짐승의 뼈를 부수고 있기에 이렇게까지 소리가 큰 거지? 소년은 홀린 듯이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했다.
텅 빈 공터, 아파트의 그림자가 겹쳐진 사각지대. 가로등도 비추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소년은 발걸음을 멈췄다.
‘뭐지?’
뭔가가 있었다. 하지만 흐릿해서 잘 보이진 않는다. 그는 가까이 다가갔다. 점차 어둠 속 윤곽이 드러난다. 끈적끈적한 액체에 담긴 무엇인가…… 다섯 개의 손가락이 달린…….
‘……사람 팔?’
등 뒤로 시원한 것이 지나갔다. 소년은 무심코 시선을 옮겼다. 누군가가 그 웅덩이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.
갑자기 인영이 고개를 돌렸다. 순간 몸이 굳었다. 검은 눈동자가 그를 직시했다.
눈동자의 주인은 한 소녀였다. 한 손에 시뻘건 핏덩이를 든 채, 입가를 붉게 물들인.
“…….”
이게 뭘까? 소년은 자문했다. 물론 대답은 금방 나왔다. 아무리 상상력을 총동원해도 지금 눈앞의 광경은 한 가지 사실만을 말해 준다.
지금 저 소녀는 ‘무엇인가’를 잡아먹고 있다.
21세기, 대도시 서울, 그중에서도 땅값 비싸다는 목동의 아파트촌 한구석에서 1만 년 전에나 흔했을 광경이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.
소름이 끼쳐야 정상이건만 소년은 멍하니 눈앞의 광경을 바라만 보았다.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 실감이 안 나는 걸까?
그때 소녀가 몸을 일으켰다.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그녀의 얼굴이 달빛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드러났다.